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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옥연의 작업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초기에는 구상적 화풍을 띠다가 1950년대 후반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는 추상적 경향과 초현실주의적 경향을 결합한 실험적이고 개성적인 양식의 화풍으로, 이후에는 인물, 정물, 풍경 등의 구상적 화풍으로 회귀하는 변화의 과정을 거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변화 때문에 권옥연은 어느 경우에는 구상작가로서, 또 다른 경우에는 추상작가로서 여겨지고 각각의 잣대에서 각기 다른 평가를 받아 왔다. 권옥연의 작품들은 그것이 구상적이든, 추상적이든 간에 독특하면서도 일관된 특징을 드러낸다. 권옥연 회화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그의 감수성에 바탕을 두고 그만의 시각과 기법을 통해 창출된 회화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권옥연은 그의 마음속에 잠재하는 형상이나 환상을 그리기 위해 여러 가지 사물을 변형시키고 조립함으로써 독특한 이미지를 표현해 왔다. 즉 고대의 상형문자나 토기와 목기 같은 전통적 기물, 기묘한 풍경 또는 여인을 모티브로 삼고, 채택된 소재들을 과감히 변형하거나 해체함으로써 강한 상징성을 지닌 이미지들을 만들어 낸다. 그가 창출해 낸 이미지들은 작가가 부여한 독특한 상징적 체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면 볼수록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권옥연에 대한 화단의 분류와 평가가 분분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권옥연 자신이 세속적인 잣대에 무심하다는 사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넘어서서 화가의 본분을 다해 자신만이 그려낼 수 있는 이미지를 찾아 자유롭게 유영(遊泳)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개성적 화풍이 완성한 개인양식은 ‘이미지’와 ‘상징성’으로 압축되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권옥연이라는 한 사람의 작가가 이룩한 이 예술세계는 고독하지만 어떤 다른 이와도 비견될 수 없는 고고한 독자적 경지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들은 권옥연을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우리 마음속에 각인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조용훈 교수가 본 ‘2001 올해의 작가 권옥연전’

작가설명

<생애>

1923년 7월 4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동경과 파리에서 수학하고 국전과 살롱 도톤느 등의 국내외 공모전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였고 여러 차례의 개인전과 도쿄, 파리, 상파울루 등의 국제전에 참여하였으며 국전 심사위원 등 여러 단체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78년 금곡박물관 관장직을 맡았고 1983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서양화)이 되었다. 서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가르쳤고, 1999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비상임 이사로 임명되었다. 초기에는 구상적 화풍을 띠다가 1950년대 후반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는 추상적 경향과 초현실주의적 경향을 결합한 실험적이고 개성적인 양식의 화풍으로, 이후에는 인물, 정물, 풍경 등의 구상적 화풍으로 회귀하는 변화의 과정을 거친다. 특히 1950년대 파리 유학을 통해 앵포르멜 등 유럽 미술의 최신 경향을 직접 체험하고 개성적인 추상양식을 구축하였다. 파리에서 체류하는 동안 살롱도톤, 레알리테 누벨 등 당시 파리의 주요 전시회에 참가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차츰 문학성 강한 기존의 사실주의 양식을 버리고 추상실험에 열중하였다. 이후에는 초현실주의적 요소가 가미되어 상상의 세계, 꿈의 세계,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표현되고 있다. 마음속에 잠재하는 형상, 환상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사물을 변형시키거나 해체, 조립하여 그만의 강한 상징성을 지닌 이미지를 만들어내었다. 담담하게 그만의 독자적인 이미지를 가진 작가로 분류할 수 있다.

<약력>

1923년 함경남도 함흥시 남문리 출생 1942년 서울 제2고등보통학교(경복고등학교) 졸업 1942년 동경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 입학 1948년 1회 개인전, 동화백화점화랑(서울) 1951년 2회 개인전, 대도회 1953년 제5회 대한미협전 문교부장관상 수상 1956년 도불기념 제3회 개인전, 동화백화점화랑 1956년 제5회 국전 특선 1957년 파리 수학 1958년 살롱 도톤느 입선(파리) 1960년 제9회 국전 특선 1960년 귀국전-체불작품전(滯佛作品展), 국립도서관 화랑(서울) 1961년 5회 개인전, 국립도서관 화랑 1964년 6회 개인전, 신문회관 화랑 1965년 7회 개인전, 니혼바시 화랑(동경) 1970년 8회 개인전, 신세계백화점 화랑 1986년 대한민국예술원상 미술부문 수상 1994년 3·1문화상 수상 1998년 공로예술인상 수상

<예술활동>

권옥연의 초기의 작품에서 보이는 조형성은 후기인상파에서 비롯되는 모더니즘에 심취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 중 특히 고갱에서 비롯되는 상징주의에 많은 감화를 받았다. 조형의 자율성보다는 문학적, 설화적 요소를 회복시키려는 고갱과 나비파에서 시작되어 세기말의 상징주의로 발전해간 문맥에 대한 동경의 흔적이 1948년도 국선 입선작인 <고향>을 비롯한 초기 작품들에서 발견된다. 1950년대 파리에서 체류하는 동안 살롱도톤, 레알리테 누벨 등 당시 파리의 주요 전시회에 참가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차츰 문학성 강한 기존의 사실주의 양식을 버리고 추상실험에 열중하였다. 그 당시 파리는 앵포르멜이 풍미하던 시기로, 비정형의 홍수 속에서 권옥연 역시 영향을 받으나 단순한 비정형으로서의 앵포르멜이라기에는 그의 화면엔 형태를 알 수 없으나 분명히 암시적인 형상이 떠오르고 있다. 따라서 1960년 귀국전시회에 보인 작품들의 반향은 경향에 편승되지 않은 작가의 고유세계의 형성으로 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도불 이후 그의 화면은 현실의 세계에서 점차 상상의 세계, 꿈의 세계, 무의식의 세계-초현실적인 세계로 전환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의 초현실의 세계는 1965년 동경 초대전에서‘지나간 옛날의 노스탤지어가 아련하게 떠오르는 환영…’이라고 한 말에서 드러나듯, 민속공예품과 신라 토기에 심취하여 토기나 청동기가 주는 질박하고 영겁의 느낌을 한국의 토속적인 이미지에 담았다. 갑골문자 연구를 통해 기호를 이미지화하는 작업을 시도하였으며,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은 비정형의 형태와 두터운 마티에르, 청회색으로 억제된 색채 등을 특징으로 하는 회화의 골격을 형성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권옥연의 작품세계는 이전의 환시적인 세계를 그림과 동시에 여인 초상을 비롯한 구체적인 대상을 집중적으로 묘사해나간다. 이것은 초기의 향토적 서정성이 짙은 작품경향과 상통되는 요소가 있다.

<대표작품> <풍경>(1965)

작품소개

다음 몇 소개글과 블로그에서 작가의 예술세계와 작품을 살펴 볼 수 있다.
1.김종근, 2004. "회색의 땅에서 부르는 서정성의 노래 - 권옥연"
2.송풍수월(松風水月), 2010. "권옥연 화백의 작품 세계 - 고독과 허무의 색"
3.김미정, 2015. "상상력의 연금술사, 권옥연의 미술세계 - 권옥연 회고전"

참고문헌-<韓國近代繪畵選集: 洋畵>, 이구열, 금성출판사, 1990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100인선집 권옥연>, 문선호 편, 금성출판사, 1976
<평론><사랑> 연작은 전통적인 화조화를 연상시키게 하는 나무, 달, 나비, 꽃, 돌과 같은 모티브가 등장된다. 모티브의 구현도 한결 선명하다. 무엇보다 둔중한 색조에서 벗어나 화사한 원색이 등장되고 있음이 눈길을 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꽃과 나비의 화사한 색깔이 어우러진다. 상징적인 풍경이면서도 생의 즐거움이 잔잔하게 배어 나온다. 그러나, 여전히 저음이다. 색채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구성 속에 잦아든다. 색채의 자율성이 억제된다. 형태에의 의지는 초기의 작품에서나, 오랜 세월이 흐른 이후에도 변함이 없다. 1970년대 이후 갑자기 많이 제작되는 여인초상, 누드는 이보다 앞선 1968년 신세계화랑에서 가졌던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스케치전에서 보여주었던 자연대상의 사실적 묘사의 작품에서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다. 초기의 향토적 서정성이 짙은 작품경향과 상통되는 요소가 있다. 왜 갑자기 다시 대상을 충실히 묘출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일까. 작자는 그것의 한 계기로 미국 여행 중 어느 미술관에서 만난 고갱의 누드를 든다. 그는 이 작품에서 커다란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감동이라기보다 그림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가져보았다고 할까. 그림이란 모름지기 하나의 기술의 결정체가 아닌가 하는 그는, 예술가라는 말에 앞서 ‘아티쟌’이란 말을 쓰기를 좋아한다. 예술가 이전에 아티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가 한동안 대상 표현에 기술적인 측면을 남달리 강조했던 것도 이 같은 태도에 기인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고 보면, 그의 전 작품들이 한결같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어라 할까, 회화로서의 기품 같은 것을 지니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작가에 따라서는 때로 수작도 있는가 하면 타작도 있게 마련인데, 권옥연은 화면의 초기에서나 최근에서나 한결같이 고른 수준을 지탱시키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그만큼 화면의 완성도가 높다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바로 이 완성도로서의 격조가 아티쟌으로서의 태도에서 연유한 것이 아닌가 보는 것이다. - ‘권옥연의 예술 또는 환시적(幻視的) 조형’, 오광수(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작가의 참고자료

작가의 영상자료

풍경

권옥연

캔버스에 유채

50X60(12호) | 2002

KwonOkyeon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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